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아주 해롭지 않은 외부 물질에 대해서는 적당히 눈감아주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감염병이 돌거나 어떤 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때도 그렇지만 수능 등 커다란 시험을 앞두고 등장하는 문구에도 종종 면역력이라는 말을 볼 수 있다. 이러다가는 결혼정보 서비스에 가입하는 남녀들이 자신의 직업, 학력, 재산 정보 등과 함께 면역력 확인서를 제출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사실 면역력은 이런 정보만큼 중요하다).
면역력이라고 하면 우리의 몸이 외부의 적, 그러니까 세균이나 바이러스, 기생충과 싸우는 힘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병원균이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몸속으로 침입했을 텐데 누구는 병에 걸리고 누구는 왜 안 걸릴까. 그 이유가 바로 면역력이다. 그런데 의외의 사실이 있다. 세균이나 기생충이 꼭 면역력에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면역력_기생충_img1
[그림1] 출처 (GIB)
내 뱃속에 기생충 있다
일본의 한 기생충 의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자기 뱃속에서 기생충을 직접 기른 ‘괴짜’ 의사인데 도쿄의치대 후지타 고이치로 교수가 주인공이다. 후지타 교수는 자신의 장 속에서 촌충을 무려 3년이나 길렀다고 한다. 후지타 교수는 당시 촌충을 구하기가 어려워 어시장에서 불결한 생선을 골라먹고 겨우(?) 촌충에 감염됐다고 나중에 밝혔다.
그렇게 기른 촌충을 어떻게 한 걸까. 촌충은 길게 자라다가 너무 길어지면 숙주의 항문을 비집고 나온다. 후지타 교수는 이렇게 항문을 빠져나온 촌충을 조금씩 끊어 연구재료로 썼다고 한다. 기른 건 그렇다 치고, 과연 누가 촌충을 잘라줬는지도 새삼 궁금하다.
그런데 촌충을 직접 몸안에서 기르다가 후지타 교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콜레스테롤과 체중이 줄었다는 것이다. 후지타 교수는 몸 안에 쌓인 불필요한 영양분과 지방을 촌충이 먹어치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일부러 촌충에 감염돼 6개월 만에 105kg에서 55kg으로 몸무게를 뺐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면역력_기생충_img2
[그림2] 출처 (GIB)
선진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는 영양 결핍보다 영양 과잉의 더 심각한 문제다. 과연 기생충이 비만을 막는 동반자가 될까.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현대 의학에서는 기생충을 이용해 병을 치료하거나 생명의 비밀을 푸는 연구가 활발하다.
알레르기 늘어난 게 기생충이 줄어서라고?
기생충을 이용해 병을 치료하는 연구로는 단연 알레르기를 포함한 자가면역질환이 꼽힌다. 세계 여러 곳에서 이뤄진 역학 조사 결과 기생충 감염과 알레르기 질환의 수가 반비례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봉, 에쿠아도르, 잠비아 등의 역학 조사에서 기생충 감염이 천식 증상을 완화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또 미국과 일본에서는 기생충 감염이 줄어든 1930년대 이후 면역 체계의 과민 반응으로 생기는 장염과 크론병이 증가했다는 보고가 있다. 우리나라도 기생충 감염률이 떨어지면서 아토피 피부염이나 천식 등 알레르기 질환이 늘어나고 있다.
왜 기생충에 걸리면 알레르기가 줄어들까. 알레르기 반응은 면역 시스템이 특정물질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반응한 것이다. 기생충에 감염되면 면역 시스템이 기생충을 공격하느라 에너지가 줄어들어 알레르기도 함께 감소하거나, 면역시스템이 좀더 선별적으로 적을 공격할 만큼 성숙해진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즉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아주 해롭지 않은 외부 물질에 대해서는 적당히 눈감아주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면역력_기생충_img3
[그림3] 출처 (GIB)
그렇다면 기생충을 몸에 직접 넣어 알레르기 등의 자가면역질환을 고칠 수 있을까. 미국 아이오와대 조웰 웨인스탁 박사가 실제로 기생충을 이용해 약을 개발하고 있는 학자다. 연구진은 궤양성 대장염에 걸린 환자 7명에게 동물의 장에 사는 기생충의 알을 몰래 먹였다. 이들은 기존 치료법이 전혀 듣지 않았던 환자였다. 2주 뒤 기생충 알이 부화하고 유충이 태어나면서 6명이 병에서 나았다.
웨인스탁 박사는 이점에 착안해 돼지편충알을 이용한 면역강화제를 만들었다. 돼지편충은 인체에 살 수 없어 알에서 깨어난 뒤 몇 주 머물다가 배설된다. 그 사이에 인간의 면역계를 자극해 항체를 많이 만들고 면역계를 안정시킨다. 물론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면역 기능이 크게 떨어진 환자들이 대상이다.
좀더 세련된 방법은 없을까. 아무리 병이 낫는게 중요하다 해도 기생충을 입에다 털어넣기는 그렇지 않은가. 과학자들은 면역글로블린E(IgE)라는 항체를 기생충과 알레르기의 연결고리로 주목하고 있다. 이 항체는 우리 몸에서 기생충을 공격한다. 동시에 히스타민의 분비를 촉진해 알레르기가 일어나게 한다. 즉 우리 몸이 기생충에 대항하기 위해 이 항체를 만들었는데 막상 기생충이 없으니 엉뚱한 것들을 공격하게 되고 여기서 알레르기가 심해지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이해한다면 기생충을 굳이 먹지 않고도 관련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기생충이 암세포 죽일까
이제 한 발 더 나아가자. 기생충을 이용해 생각도 못했던 새로운 약을 만들 수 없을까. 기생충이 우리 몸에서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은 우리 몸을 그리 손상시키지 않고도 면역 시스템을 피하는 기술이 있다는 뜻이다. 즉 기생충이 면역 시스템을 억제하는 물질을 분비하거나 직접 면역 세포를 죽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생충이 특정 세포를 죽이는 과정을 잘 응용하면 암세포를 골라 죽이는 기술도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기생충이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공존해왔기 때문에 기생충 신약은 부작용이 훨씬 적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킬 짐머의 책 ‘기생충 제국’이라는 책에는 십이지장충으로 알려진 구충에서 외과 수술용 혈액 희석제를 개발하려는 미국의 한 생명공학 업체가 소개된다. 구충은 피를 빨아 먹기 위해 혈액 응고 단백질의 작용을 방해한다. 이 과정에서 구충이 분비하는 물질을 약으로 개발하려는 것이다.
면역력_기생충_img5
[그림4] 출처 (GIB)
더욱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있다. 아직은 가설이나 구상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실현만 되면 기생충을 인간의 좋은 친구로 격상시킬 것이다. 하나가 기생충으로 암을 치료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톡소포자충이라는 기생충이 있다. 이 기생충에 감염되면 몸 안에서 자연살해세포라는 면역세포가 늘어난다는 보고가 있다. 자연살해(NK)세포는 혈액 내 백혈구의 일종으로 체내에서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특공대’ 면역세포다. 연구가 성공한다면 기생충을 이용해 암을 치료하는 세상이 열릴 수도 있다.
당뇨병 환자가 맞는 인슐린 주사를 유전자 변형 기생충으로 대체하는 것은 어떨까. 즉 우리 몸에 해가 없는 기생충에 인슐린 유전자를 삽입한 뒤 인체에 감염시키면 몸 안에서 계속 인슐린을 분비할 것이다. 부작용도 고려해야 하고, 기생충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사람들이 과연 이 방법을 이용할지도 고민해봐야 하지만 매번 주사 맞는 고통이 싫은 사람들은 충분히 생각해볼만 하다.
필자 소개 / 김상연
김상연은 과학동아 편집장을 지낸 뒤 현재 동아사이언스 전문기자로 있다. 개그콘서트와 무한도전보다 더 재미있는 과학기사를 꿈꾸며 20년 간 과학기자를 해왔다. 과학이 그저 재미있는 것만은 아니지만 과학을 알면 좀더 즐겁고 올바르게 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과학과 함께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우리 옆집 과학자> <줄기세포> <과학이슈11> 등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썼다.
http://www.scienceall.com/%EB%A9%B4%EC%97%AD%EB%A0%A5-%EB%86%92%EC%97%AC%EC%A3%BC%EB%8A%94-%EA%B8%B0%EC%83%9D%EC%B6%A9/



Have any Question or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Recent Posts